1. 보령중앙시장의 특징
보령중앙시장은 대천장을 이어받은 유서 깊은 전통 재래시장으로 보부상이 주로 그 활동 무대로 삼았던 시장이다. 주소는 충청남도 보령시 중앙시장2길 9이다. 상설시장이 있고, 매월 3, 8일에는 정기시장이 열린다. 장날이 되면 시장 외곽에 노점이 넓게 펼쳐진다. 음식을 파는 거리, 과일 거리, 패션 거리, 건어물 및 제수 상품을 판매하는 거리 등으로 구역별로 나뉘어 있어 장보기에 매우 편리하다.
2. 보령중앙시장의 역사
조선시대, 보령 지역에 주로 거래되었던 물품은 어염을 포함한 다양한 농산물과 해산물 외에 모시, 청석과 오석이였다. 청석과 오석은 특히 이 지역의 특산물이자 과거 문인들이 많이 사용하던 것이었다. 청석은 벼루를 만드는 데 많은 양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주로 거래되는 특산물 중 하나였다. 특히 보령 남포 지역의 오석은 신라 때부터 우수한 품질로 명성이 높아 비석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그 무엇보다 활발히 거래된 특산물은 모시였다. 보령의 남포는 모시를 많이 생산하는 여덟 지역인 부여, 홍산, 남포, 비인, 한산, 서천, 임천, 정산 등 저산팔구 중 한 곳이었다. 충청도 지역의 저산팔구가 모시의 명산지였다. 그 때문에 모시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인들이 있었고, 이들의 판매를 도왔던 것이 보부상들이었다. 보령은 바다를 옆에 두고 있어 교통이 편리했고, 그래서 시장이 탄생하고 발전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동국문헌비고》에 의하면 당시 보령에는 읍내장을 포함해서 주교장, 대천장, 수영장 등 네 곳의 정기시장이 성행하고 있었다. 보령중앙시장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보령시의 행정 구역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14년,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행정 지역 통폐합에 의해서 남포군과 보령군, 오천군이 모두 보령군으로 개편이 되었다. 보령군의 중심은 대천면이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1940년대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보령의 시장을 살펴보면 대천장, 간치장, 웅천장, 청소장이 개설되어 있었고, 중심 시장의 역할을 한 것은 역시 대천장이었다. 1963년,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에는 이 지역의 중심인 대천리가 대천읍으로 승격되었고, 1986년에는 대천시로 변경되었다. 결국 1995년에는 대천시와 보령군이 통합되면서 ‘보령시’가 되었다. 따라서 현재 보령의 중심은 과거의 대천리와 대천읍인 셈이다. 또한 대천장의 전통을 이어받은 시장이 오늘날 대천동에 열리고 있는 ‘보령중앙시장’이다. 따라서 보령시장은 1907년 당시 보령 읍내장이 없어지고 대천장을 주축으로 발전해왔다. 보령중앙시장은 여전히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보부상 단체 ‘원홍주육군상무사’의 활동으로 시장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1990년 대경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이 소비 패턴과 유통구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면서 기존 전통시장의 지위를 위협했다. 또 2006년에는 시장 주변에 있던 버스터미널이 이전하고, 2007년에는 장항선 보령역이 보령시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시장은 활기를 잃고 말았다.
3. 보령중앙시장의 보부상
보령 일대는 오래전부터 보부상의 활동이 특히 활발했던 곳이다. 보부상은 보상과 부상으로 나눌 수 있다. 보상은 봇짐장수라고도 불렸는데, 상품을 보자기에 싸서 운반하거나 질빵을 메고 다니면서 시장에서 보자기 위에 상품을 펼쳐놓고 판매하는 상인이다. 보상들은 아주 비싼 상품을 판매하면서 정교한 세공품이나 가볍고 작으면서도 값진 제품들을 판매했다. 예를 들어 유단이나 유기, 포목, 완구, 지필묵, 금은 세공품 등이다. 부상은 등짐장수라고도 불렸는데, 상품을 지게에 메고 다니면서 시장이나 마당 같은 여러 장소에서 상품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판매하는 상인이다. 부상들은 목기나 어염, 도자기, 바가지, 연초, 토기 등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하고 보관과 운반이 편리한 상품들을 팔았다. 보부상들이 주로 역사의 기록에서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전기부터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다.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인 것은 개항 시기 전후로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보부상들은 일제의 식민정책에 따라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보령 지역의 ‘육군상무사’는 그들의 협동 정신과 조직력, 규율, 해산물 유통의 강점을 기초로 일제강점기에도 계속 활동을 이어갔다. 그 이유는 외국인들의 상행위를 개항 직후에는 개항장에서 일부 반경(4km) 이내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외국의 상인들이 농촌의 일반 소비자와 직접 마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들이 물건을 사고팔게 도와주는 중개자 역학을 한 것이 바로 보부상들이었다. 보부상들은 외국 물건을 받아 지역으로 가서 쌀과 바꾸고, 그것을 다시 한국 도매상이나 일본 상인에게 넘기는 형태였다. 이때 농촌의 쌀이 무한으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부상들의 중간 거래 유통으로 인해 시장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점이 있었다.
4. 보령중앙시장의 현재 모습
보령중앙시장은 2014년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지정되면서 기존의 시설을 개발해 현대화로 추진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행사를 통해 이용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2007년 3월 8일에 중앙시장으로 등록하고, 2011년에는 시장 안내 간판 설치, 화장실 신축 등 편의시설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했다. 보령중앙시장 옆에는 한내시장이 있는데, 이곳은 어물전과 채소전이 주로 판매되고 있다. 활발한 한내시장은 중앙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시장이 확대되면서 만들어진 시장이다. 한내시장 뒤쪽에는 동부시장과 현대시장이 있지만, 현재는 그 규모가 점차 줄고 있다. 특히 보령 지역의 갯벌을 중심으로 오늘날 보령을 상징하는 머드 축제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 중 하나다. 머드 축제는 대천해수욕장의 진흙이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될 정도로 피부 미용에 매우 좋다는 것이 홍보되면서 이를 알리기 위해 시작되었다. 축제는 매해 대성공을 이루고 있으며 2014년에는 329만 명의 관광객이 보령의 머드 축제에 방문했다. 특히 외국인들이 흥미를 가지는 축제이기도 해서 세계적인 축제로 명성을 펼치고 있다.
5. 보령중앙시장의 먹을거리
보령에서 가장 유명한 먹을거리는 꽃게탕과 천북 지역에서 생산되는 굴구이, 간자미무침 등이다. 꽃게탕뿐만 아니라 게장이나 게 찜 등 다채로운 꽃게 요리를 먹어볼 수 있다. 천북 지역은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기 때문에 굴의 성장이 느려 맛있는 굴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천북 굴구이는 구워서 먹는 별미이고,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천북면에서는 이를 계기로 매년 굴 축제를 개최해서 굴구이를 비롯한 다양한 굴 요리를 선사한다. 또한 간자미무침은 서해 앞바다에서 곧바로 잡아 올린 싱싱한 간자미에 오이와 깨 등 다양한 양념을 버무려 만든 별미 중의 별미이다. 이처럼 보령 시장은 서해를 접하고 있기 때문에 바다에서 생산되는 싱싱한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6. 보령중앙시장 찾아가는 길
보령중앙시장은 대천천과 가까운 곳에 있다. 오래전에는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이 시장 주변으로 다녔지만, 현재는 대천천 건너편인 시 외곽으로 옮긴 상태이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좋고,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에서 시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남대천교를 지나서 큰길을 따라 시내로 가다가 좌측으로 보면 보령시장을 찾을 수 있다. 시장의 맞은편에는 대남초등학교가 있고, 남대천교를 지나 1k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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